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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고택

우리나라 전통한옥 중 원형 그대로의 한옥을 엄선하여, 선조들의 멋과 정신을 체험을 통해 느낄 수 있는 명품고택을 소개해 드립니다.
  • 명품고택이란?-국내외 관광객에게 우리나라 전통한옥에서의 생활과 문화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곳으로 문화재 또는 70년 이상된 한옥 중 종부가 운영하고 있는 원형 그대로의 한옥을 엄선하여, 선비들의 생활상을 경험해 볼 수 있도록 내부를 구성하여 전국의 산재한 고택, 종택을 활용하여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고, 나아가 우리나라만의 문화를 알리는 사업입니다.
  • [북촌댁] 선비의 기품과 학식이 그윽한 안동 하회마을 명문 고택
    [북촌댁] 선비의 기품과 학식이 그윽한 안동 하회마을 명문 고택
    하회마을에 위치한 북촌댁은 당호가 화경당(和敬堂)으로 210여 년 동안 '적선지가積善之家(좋은 일을 많이 한 집)'로서 나눔의 정신과 선비들의 학식과 기품을 고스란히보존하고 있는 류씨 집안의 고택이다.대대로 낮은 소작료로 소작인들의 부담을 덜어 주었고 홍수해 때에는 사재를 털어 이웃을 도왔으며 일제 강점기에는 나라를 걱정하여 독립운동에 앞장섰다.대과급제와 퇴계서애학서로 이어지는 영남학맥을 이었고, 8대 조모 연안 이씨가 지은 규방가사 '쌍벽가'는 여성 최초의 규방가사로 유명하다.내부배치도북촌유거(큰사랑)북촌유거는 가장 웃어른이신 할아버지께서 거주하시던 사랑으로 간혹 ...
  • [의성 소우당] 전통 양식을 근간으로 한 풍요로운의 정원
    [의성 소우당] 전통 양식을 근간으로 한 풍요로운의 정원
    해가 까마득히 높이 떠오르면 그 뜨거운 볕을 피하기 위해 어디로든 숨고 싶어진다. 햇살이 유독 따가운 경상북도 의성(義城)에서 그런 공간은 더 절실할 터. 어쩌면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다. 소우당(素宇堂)이 어느 곳보다 아름다운 비밀의 정원을 갖게 된 것은.소우당의 정원은 일반적인 조선 시대의 정원과는 형태가 달라, 색다른 풍류를 즐길 수 있던 곳이다. 대부분의 조선 시대 정원은 집과 정원의 구분이 분명하지 않아 자연을 담장 안으로 불러들이는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소우당의 정원은 담장 안의 다양한 식물까지도 주인이 직접 골라 식재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연 ...
  • [영월 우구정 가옥] 초야에 묻혀 있던, 아담한 기와집의 재발견
    [영월 우구정 가옥] 초야에 묻혀 있던, 아담한 기와집의 재발견
    고택(古宅)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조금은 무겁고 쉽게 다가설 수 없는, 그래서 어딘지 모르게 불편해지는 감정. 영월 우구정 가옥에서 감수해야 할 것은 바로 그 낯섦 단 한 가지이다.그 외의 모든 것은 그 공간에서 편안함과 따뜻함으로 변화한다. 심지어 우구정 가옥은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누가, 언제 지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는 곳이라 손꼽아 따져 봐야 하는 연대기로부터도, 그리고 집을 지은 사람의 다양한 업적으로부터도 자유롭다. 우구정 가옥이라는 이름 역시, 이 집이 문화재로 지정될 당시 집주인의 이름이 우구정 씨였기에 붙여진 이름일 정도이다. 그래서 더욱 자연스럽 ...
  • [안동 학봉구택] 이황(李滉)의 적통(嫡統)을 이어받은 유서 깊은 고택
    [안동 학봉구택] 이황(李滉)의 적통(嫡統)을 이어받은 유서 깊은 고택
    전통적인 한옥 마당은 굵은 모래가 깔려 있을 뿐 특별한 치장이나 수목을 찾아보기 힘들다. 대체로 마당은 일을 하거나 많은 사람이 모여 회합을 하는 데 이용되었기에 평평하고 넓은 것이 가장 큰 미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동의 학봉종택은 이런 전통적 한옥의 이미지와 다르게 푸르름으로 가득 차 있다.솟을대문을 지나면, 거기에는 잔디가 곱게 펼쳐져 있고, 커다란 나무들도 적당한 간격을 두고 식재돼 있어 영화 속에서나 보던 외국의 저택에 들어선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한다. 하지만 이 집에 서린 이야기들은 낭만적이라기보다 결연하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그동안 알고 있었던 사 ...
  • [봉화 남호구택] 명망(名望)과 실용(實用)이 살아 있는 집
    [봉화 남호구택] 명망(名望)과 실용(實用)이 살아 있는 집
    존경할 만한 부자(富者)를 찾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는 말에 동의를 하는 사람들은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 자신보다 대의를 먼저 생각했던 부자는 분명히 존재했다. 그 사실을 확인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봉화의 남호구택을 찾으면 되니까.남호구택은 1876년에 김난영(金蘭永, 호 : 농산(聾山))이 건립하고, 그의 아들 김뢰식(金賚植, 1877~1935, 호 : 남호(南湖))이 살던 곳이다. 대개의 경우 건립자의 호를 집의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특이하게도 이곳은 아들의 호가 집의 택호(宅號)가 되었다. 유래에 대해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는 곳이 ...
  • [안동 퇴계태실] 주자학(朱子學)의 큰 별이 솟아오른 고택 노송정(老松亭)
    [안동 퇴계태실] 주자학(朱子學)의 큰 별이 솟아오른 고택 노송정(老松亭)
    하나의 집을 하나의 공간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노송정종택에서는 유효하지 않다. 물론 어느 집이든 그곳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고 그 이야기 속의 의미가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경우도 있지만, 조선을 넘어 당대(當代)와 후대(後代)의 동아시아 전체에 사상적 스승으로 우뚝 솟은 인물이 태어난 집이라면 단순히 하나의 공간으로만 보기엔 역부족일 것이다.특히 그 집의 형태가 다른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특이점을 갖고 있다면, 그리고 바로 그 독특한 공간에서 수백 년이 지난 후에도 그 명성을 잃지 않고 있는 인물이 태어났다면 그곳의 의미는 달라지기 마 ...
  • [상주 오작당] 근신과 낭만의 양립, 진정한 선비의 집
    [상주 오작당] 근신과 낭만의 양립, 진정한 선비의 집
    사대부로서 가장 높은 가치는 입신양명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이름을 널리 알리기 위해 한학(漢學)을 공부하고 시를 짓는 것은 진정한 선비의 길이 아니라 생각하는 사대부 역시 존재했다. 그런 철학이 스며들어 지금까지 오롯이 숨을 쉬고 있는 집이 바로 상주의 오작당이다.오작당(悟昨堂)은 그릇된 것을 반성하고 바로잡아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게 하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집이다. 입신(立身)에 앞서 근신(勤愼)을 강조했던 가풍이 서려있는 소박한, 하지만 낭만적인공간이기도 하다.내부배치도끊임없이 나를 바로 잡는 곳조선 후기, 가장 유명했던 가문을 꼽 ...
  • [봉화 만산고택] 춘양목(春陽木)처럼 변함없는 절개, 올곧음으로 서다
    [봉화 만산고택] 춘양목(春陽木)처럼 변함없는 절개, 올곧음으로 서다
    건축에 사용하는 재료가 다양해지고 그 생산 방법 역시 현대화되다보니 그 명성이 예전 같지는 않지만, 경상북도 봉화(奉化)의 춘양면(春陽面)은 한반도 최고의 목재를 생산하던 곳이었다. 그래서 춘양에서 생산된 금강(金剛) 소나무는 전국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는데, 아무나 구할 수는 없었고 궁궐이나 관청, 지체 높은 양반의 집을 건축할때나 사용이 가능했다. 조선 후기 봉화군 춘양면에 강용(姜鎔, 1846~1934, 호 : 만산(晩山))이 건립한 만산고택은, 그런 춘양목을아낌없이 사용한 집이다.지은 지 벌써 130년이 지났건만 이 집이 여전히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것은 어찌 ...
  • [봉화 권진사댁] 존경과 인품이 엿보이는 성암(惺菴)고택
    [봉화 권진사댁] 존경과 인품이 엿보이는 성암(惺菴)고택
    이름으로 남아 있는 집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말을 우리는 참 많이도 들어왔다. 하지만 모든 격언이 그러하듯, 알고 있는 대로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 역시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서 이 집, 권진사댁은 호기심과 경외감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권진사라는 사람이 어떠한 삶을 살았기에 지금까지도 가호(家號)로 권진사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 것일까.내부배치도인품처럼 반듯한 집높다란 솟을대문을 지나 마당에 들어서면 시원함을 느끼기 좋게 지어진 넓은 사랑채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 사랑채의 왼편으로는 오래 전, 공 ...
  • [경주 충의당] 경주 최부자의 혼(魂)이 시작된 소박한 공간
    [경주 충의당] 경주 최부자의 혼(魂)이 시작된 소박한 공간
    경주에서 가장 유명한 가문을 이야기할 때, 그리고 우리 역사의 가장 대표적인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이야기할 때 항상 첫 손에 꼽히는 최부자집. 하지만 그 명문가에도 원류는 존재한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모두 참전하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렸던 정무공(貞武公) 최진립(崔震立)이 생애를 보낸 충의당(忠義堂)이 바로 그곳이다.내부배치도안팎으로 단속하는 정갈함충의당은 크지도 위압적이지도 않다. 단정하고 반듯한 공간들은, 최진립 장군의 고매한 인품을 반영이라도 하듯 기단이 낮고 화려하지 않으며 건물의 위세를 뽐내지 않는다. 그곳에 살던 사람, 그리고 지금도 자리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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