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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망(名望)과 실용(實用)이 살아 있는 집
남호구택(南湖舊宅)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바래미길 소재

남호구택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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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할 만한 부자(富者)를 찾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는 말에 동의를 하는 사람들은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 자신보다 대의를 먼저 생각했던 부자는 분명히 존재했다. 그 사실을 확인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봉화의 남호구택을 찾으면 되니까.

남호구택은 1876년에 김난영(金蘭永, 호 : 농산(聾山))이 건립하고, 그의 아들 김뢰식(金賚植, 1877~1935, 호 : 남호(南湖))이 살던 곳이다. 대개의 경우 건립자의 호를 집의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특이하게도 이곳은 아들의 호가 집의 택호(宅號)가 되었다. 유래에 대해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는 곳이다.

내부배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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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호구택 배치도

고고한 사연 속으로의 여행



봉화(奉化) 읍내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남호구택은, 해저리(海底里)의 한가운데에 당당한 모습을 하고 있다.

“ 해저는 인근 안동 등지에도 소문난 명문 마을입니다. 제 아버지의 누이들, 그러니까 제 고모님들 모두가 경상북도의 명문가로 시집을 가시고 몇몇 분은 종부로 가문을 이끌어가고 계시는 것도 모두 선대 어른들의 학식과 인품, 그리고 사라지지 않는 큰 족적 덕분이지요.”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활발하게 사업을 이끌다가 집안을 책임지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장손은 “지금의 해저를 있게 한 것 역시 김뢰식 할아버지가 이루신 업적”이라 설명했다. 상당한 부를 축적한 후에는 일가친척은 물론 이웃의 번영을 위해 베푸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베풂은 훨씬 더 넓고 높은 곳을 향했다.

“ 상해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을 위한 군자금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으신 김뢰식 할아버지께서는 어떻게든 돈을 마련하셔야 했는데, 있는 거라곤 농사지을 땅밖에 더 있었겠습니까. 그 땅을 모조리 저당 잡히면서까지 군자금을 마련하셨답니다.”

항상 나라를 먼저 생각해 온 큰 어른의 결정이었다. 해방 후 시간이 지나 1977년에 이르러서야 정부에서는 김뢰식 선생에게 건국 훈장을 추서했지만, 가세는 이미 예전만 하지 못했던 게 당연한 일. 토지개혁 이후 문중의 땅을 나눠 받은 사람들끼리 십시일반 남호구택의 살림을 돕겠다 했지만 김뢰식 선생의 손주 며느리는 이역시도 마다하고 삯바느질로 집안을 꾸려 나갔다고 한다. 독립운동을 후원했던 명문가의 지난(至難)한 시간을 평범한 사람들이야 그저 상상으로만 그려볼 뿐이다.


봉화 남호구택 대문

봉화 남호구택 대문

봉화 남호구택 툇마루

봉화 남호구택 툇마루

춘양목으로 지은 든든한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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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 남호구택 안채마당

응방산(鷹坊山) 줄기의 낮은 야산을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는 이 집은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안채와 사랑채가 접하여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보통 ㅁ자형 집은 사랑채의 가운데에 중문을 두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집은 옆면에 동향으로 난 중문이 있다. 나무의 고장인 춘양(春陽)에 위치한 부잣집답게 부재의 크기가 호방하고 양질의 고급 목재를 사용하여 100년이 넘은 고택인데도 불구하고 변형되지 않고 보수한 흔적이 많지 않다. 봉화 남호구택 안채마당

도장방이 도드라진 사랑채

봉화 남호구택 사랑채

남호구택의 사랑방은 독특하게 구성되었다. 사랑채에 큰사랑, 작은사랑 등 방 3개를 사랑채로 사용하고 있으며, 큰사랑과 작은사랑 사이에는 마당 쪽으로 돌출된 도장방(導掌房)이 있어 특이한 구성을 보이는데, 이곳은 사랑채에서 사용되는 여러 기물 등을 보관하는 창고로 사용되었다.

집이 전체적으로 요철과 음양의 조화를 염두에 둔 듯한 구성과 배치로 균제미(均齊美)가 있어서, 단순하고 정제됐을 뿐 아니라 아기자기하고 실용적인 멋까지 두루 갖추고 있다. 봉화 지역의 ㅁ 자 주택의 특징은 완전히 닫힌 폐쇄적인 구조와 현대의 베란다 역할을 하는 툇마루를 적극적으로 사용한다는 점인데, 남호구택의 경우, 기후를 고려하여 수납 공간을 유연하게 만드는 등 실용적인 의도가 엿보인다. 봉화 남호구택 사랑채

마을 도서관이었던 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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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 남호구택 별채

남호구택에는 서실로 사용하는 별채가 집과 붙어 있지 않고 따로 떨어져 있는데 집 문을 나서서 뒤로 돌아가면 서실로 사용하였던 영규헌(映奎軒)이라는 건물이 있다. 이 건물은 개인 서실이기도 했지만 마을 도서관 역할을 했다고 한다. 영규헌에는 ‘예의염치(禮義廉恥)’와 ‘효제충신(孝悌忠信)’이라고 적힌 편액이 있는데 조선 중기의 문신인 허목(許穆, 1595~1682, 호 : 미수) 선생의 글씨라고 한다. 봉화 남호구택 별채

양반가의 반듯한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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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숙객에 한해 아침상을 받을 수 있는데, 이 집의 가족들이 먹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음식들이 아침상의 주를 이룬다. 모두 경상북도 양반집의 음식들로, 그 맛이 선명 하면서도 품격이 있다. 특히 인공조미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모두 직접 담근 장으로 간을 한 덕분에 자극적인 음식이나 즉석식품에 지친 사람들에게는 그보다 더 푸근한 밥상은 없을 정도.

그 중에서도 특히 남호구택이 자랑하는 메뉴는 황태보푸라기와 수란이다. 황태보푸라기는, 잘 말린 황태살을 숟가락으로 긁어 마치 섬유 보풀처럼 곱게 갈아낸 후 설탕이나 조청 등의 단맛이 나는 양념, 소금이나 간장처럼 짠맛이 나는 양념과 함께 버무려 내놓는다. 수란은 들깨가루와 식초, 소금으로 만든 국물에 숟가락으로 뜨거운 물을 부어 익힌 계란을 넣어 먹는 음식. 차갑고 시큼한 국물과 곱게 익은 계란의 뭉근하고 담백한 맛이 이색적이다. 모두 귀한 손님들을 위해 정성스런 손맛으로 간을 해 고택의 기품과 소박한 정이 가득 배어나는 상차림이다.


봉화 남호구택 반상

봉화 남호구택 반상

봉화 남호구택 밥상

봉화 남호구택 밥상

여행정보

여행정보
  • 부석사
  • 순흥 선비촌
  • 소수서원
  • 남호구택
숙박정보
    • 큰사랑 남성 손님들을 맞이하던 곳. 4~5인용
    • 작은사랑1 남성 손님들을 맞이하던 곳. 4~5인용
    • 작은사랑2 남성 손님들을 맞이하던 곳. 3~4인용
    • 안채 상방 집안의 어른이 기거하던 곳. 3~4인용
    • 대문간방 집안일을 하는 사람 또는 신분이 낮은 손님이 머물던 곳. 3~4인용
    • 대문간 큰방 집안일을 하는 사람 또는 신분이 낮은 손님이 머물던 곳. 5~6인용
    • 별채(방 2개와 대청마루)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던 곳. 6~7인용
    • 아침 식사는 유료(예약 필수). 저녁 식사는 제공하지 않음
    • 모든 방에서 취사 불가
    • 외부 화장실과 욕실 이용

숙박정보 보기

교통편
  • 승용차 이용시

    풍기IC → 봉현교차로에서 소백산국립공원, 제천, 봉화, 영주 방면 좌회전 → 안동, 영주, 봉화 방면 좌측 방향 → 상망교차로에서 울진, 봉화 방면 우회전 → 신암교차로에서 신암리 방면 우측 방면 → 봉화 방면 우회전 → 봉화로 → 남호구택

  • 고속버스 이용시

    봉화공용정류장 → 33번 탑승 → 남호구택

  • 기차 이용시

    봉화역 → 33번 탑승 → 남호구택

주변 관광지

  • 01
    부석사
    부석사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文武王) 16년(676) 해동(海東) 화엄종(華嚴宗)의 종조(宗祖)인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왕명(王命)으로 창건(創建)한 화엄종의 수사찰(首寺刹)이다. 대사가 당(唐)나라에 유학하고 있을 때 당 고종(高宗)의 신라 침략 소식을 듣고 이를 왕에게 알리고, 그가 닦은 화엄의 도리(道理)로 국론(國論)을 통일(統一)하여 내외(內外)의 시련을 극복하게 하고자 귀국하여 이절을 창건하였으며 우리나라 화엄사상(華嚴思想)의 발원지가 되었다. 자세히보기
  • 02
    순흥 선비촌
    순흥 선비촌
    유교문화 발상의 중심지로서 옛 선비정신을 계승하고, 선현들의 학문 탐구와 전통생활 모습의 재현을 통하여 관광자원화하고, 미래지향적인 관광산업의 발전을 도모하며, 우리 전통적 고유사상과 생활상의 체험 교육장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선비촌은 우리 민족의 생활철학이 담긴 선비정신을 거양하고 사라져 가는 전통문화를 재조명하여 윤리도덕의 붕괴와 인간성 상실의 사회적 괴리현상을 해소시켜 보고자 충효의 현장에 재현하게 된 것이다. 앞으로 소수서원과 연계되는 영주선비정신의 계승과 이를 통한 올바른 가치관 정립 그리고 역사관 확립을 위한 산교육장으로 활용될 것이다. 선비의 생활상을 이해하는 오감체험형전시와 참여형 이벤트, 전통문화체험의 기회가 수시로 제공되는 선비촌의 각종 기획프로그램에서 옛 선비들의 당시 생활상을 통해 잊혀져가는 수준높은 전통문화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자세히보기
  • 03
    소수서원
    소수서원
    경북 영주시 풍기읍에서 부석사 쪽으로 조금 가면, 길 오른편에 소수서원이 있다. 우리 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이다(사액이란 임금이 현판을 하사했다는 뜻이다). 서원은 선현을 배향하고 교육하는 조선조 사립 교육기관으로 선현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 학문을 배우고 논하는 강학당, 학생들이 기숙하는 재(齋)가 기본 시설이다. 소수서원은 1543년(중종 36년) 풍기 군수였던 주세붕이 흠모하던 회헌 안향의 사당을 숙수사지에 세우면서 시작된다. 초기의 이름은 백운동 서원이었으나, 이 후 퇴계가 풍기 군수로 부임 하면서 나라의 합법적인 인정을 요청했다. 이에 명종은 친필로 쓴 소수서원(紹修書院)이란 편액을 하사했다. "이미 무너진 유학을 다시 이어 닦게 한다"란 뜻을 담고 있다. 자세히보기

주변음식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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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봉이
주변음식점 대표사진

봉화의 특산물 중 하나인 송이버섯을 이용한 요리를 내놓는 곳. 송이돌솥밥과 송이전골이 유명한데, 지역 내에서 생산되는 송이로만 요리를 하고 있어 특히 그 향기로운 송이향을 잊지 못하고 일부러 다시 찾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봉화군에서 지정한 ‘봉화송이요리전문점’이라 믿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

  • 주소 :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내성리 232-11
  • 전화 : 054-673-1090
인하원
주변음식점 대표사진

송이요리 전문점. 다만 일반적인 송이요리 전문점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메뉴가 있어 관심을 끄는데, 바로 송이돌솥밥과 함께 나오는 송이전이 바로 그것. 일반적인 파전에 싱싱한 송이가 가득 들어가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송이향이 잔뜪 밀려오는 느낌이다. 오리고기도 함께 즐길 수 있다.

  • 주소 :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석평리 713
  • 전화 : 054-672-82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