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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서포터즈4기] 안동 임청각 - 99칸 기와집은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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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 장경훈 한옥서포터즈 | 등록일 : 2013-01-18

오늘은 안동여헹에서 지나가다 꼭 들러봐야할 곳 '임청각(보물 제182호)'을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곳은 원래 고택체험으로 숙박시설로 활용되었었는데, 현재는 보수중이라 숙박은 불가능 하더군요. 필자도 하룻밤 묵어가려 들어갔는데 수리중이라 이용하지 못했습니다. 조만간 수리가 끝나면 다시 숙박 가능하니 조금만 기다려줘야겠습니다. ^^

이곳은 중종 14년(1519년)에 형조좌랑을 지냈던 고성이씨 이명(李洺)이 지은 집으로 원래는 99칸의 집이였다고 하나 지금은 70여 칸만 남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민가 중 하나인 이 집은 독립운동가이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1858-1932)의 생가이며, 그의 아들과 손자 삼대에 걸쳐 독립유공자를 배출한 유서 깊은 곳입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사진을 보면서 할께요. 자 들어갑니다.
 

 
임청각은 원래 천여평의 부지에 99칸의 기와집이였습니다. 집 앞으로는 낙동강이 굽이흐르고, 강 옆의 백사장과 앞 산은 한폭의 그림입니다. 집 뒤로는 영남산이 자리하고 있어 전형적인 배산임수 남향 집입니다.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동쪽 언덕에 올라 긴 휘파람 불고, 맑은 물가에서 시를 짓는다'는 구절을 인용해 '임청(臨淸)'이라 이름을 붙였다.

 

 

 

 

 


 
 

 

그후로 500년...

임진왜란때 선조를 업고 피난간 약봉 서성, 흥선대원군 시절 개혁의 선봉에 섰던 좌의정 류후조, 그리고 상해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을 포함한 9명의 독립운동가가 이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특히 임청각의 종손이었던 석주 이상룡선생은 일본의 침략이 시작되자 전 재산을 쏟아 항일운동에 뛰어듭니다. 그는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재산을 처분하고 집안의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사당의 신위까지 땅에 묻고 종택을 떠납니다. 1911년 국권피탈 후 가족을 데리고 만주로 망명했고, 만주에서 신흥무관학교를 운영하며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에 오르게 됩니다.
 
 
 

 
 
주인을 잃은 집...

다시 집으로 돌아온 후손들도 이 집에 편히 머물지 못했습니다. 석주선생의 아들 이준형은 일제의 감시를 피해 안동의 산골로 옮겼으나 계속되는 일제의 탄압으로 '일제 치하에 사는 것은 수치'라는 유서를 쓰고 자결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때 일제는 중앙선 철로를 놓는다고 임청각 가운데로 관통하게 만들어 대문간과 행랑채 등 집을 반이나 헐어버렸습니다. 집은 해방 후에도 철도 노동자 집단합숙소로 이용되면서 심하게 훼손되었다가 몇 번의 수리끝에 그나마 지금의 상태를 되찾게 되었습니다. 석주선생이 만주로 망명한 후 버려져 있던 집은 1920년 새로운 등기제도가 시작되면서 임시로 일가친척 4명에게 등기이전을 하였는데 지금에 와서 보니 초기 등기자 4명은 모두 돌아가시고 등기는 그들의 후손 70여명에게 유산으로 상속되어져 있었습니다.

일제의 호적을 거부해 다시 우리나라로 들어오지 못하던 석주선생의 유해는 돌아가신지 60여년 뒤에야 환국할 수 있었지요. 위대한 가문 독립운동가의 후손인 이항증씨는 이렇게 크고 아름다운 집을 두고 고아원에서 자라 어렵게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럼에도 그 집의 뜻과 선조의 정신을 길여 임청각을 국가에 헌납하고자하나 70여명의 승락을 받아야하는 어려운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아무쪼록 그들의 뜻을 받드는 선택이 되길 바랍니다.

 

 

 

 


 

임청각의 사랑채 '군자정'

 

 

 

 


 

 
군자정(君子亭)은 丁자 형태로 지어진 팔작지붕의 정자입니다.
방과 대청 주위에 툇마루를 두고 계자 난간을 둘렀네요.

 

 

 

 


 

 

구석구석 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이곳은 원래 숙박을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보수 때문에 숙박을 할 수는 없더군요.

 

 

 


 

 

'ㅁ'자로 둘러있어 마당은 햇빛이 들어오네요.

 

 

 


 

 

비오는날 또는 눈 오는날 여기서 하룻밤이 기대됩니다.

 

 

 


 


이곳은 석주선생이 태어난 사랑채.

 

 

 

 

 


 

 

 

 


 

 

옛 집은 항상 문을 열면 길이 보도록 설계가 되어있더군요.

방에 앉아 내다보면 누가 집으로 들어오는지 다 보이겠군요.

 

"자네 왔능가~"

 

 

 

 

 


 

 

군자정 옆의 연지(蓮池)

옛날 양반가에는 이런 연못이 있는 집이 종종 있는데요, 이곳에 연꽃을 심어 연못에 핀 연꽃을 바라보면서 군자로서의 마음을 닦았겠지요?

 

 

 

 

 


 

 

현재 안동 임청각 앞으로는 중앙선 기차가 다닙니다.

지금도 화물열차가 줄기차게 다니고 있더군요.

 

한국인이라면 안동여행 중 반드시 들러봐야할 곳입니다.

안동 가볼만한 곳으로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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